죽은 후에는 어떻게 되는가?


죽음에 대한 종교와 과학

사람은 왜 태어나고 죽는 것일까? 죽은 후에는 어떻게 될까?  왜 지구가 있고 비는 오고 동식물이 살까? 고대부터 인간의 삶과 자연현상에 대한 답은 종교에서 찾았다.

지금은 자연현상에 대한 답은 과학에서 찾는다. 아직도  자연현상이 왜 일어나는지에 대한 답을 종교에서 찾는 사람은 그 종교에 몰빵한 사람 뿐이다.

그런데 죽은 후에 대해서는 아직도 종교에서 찾는다. 아무리 과학철학이나 과학사를 옅보아도 과학은 현상에 대한 이유를 찾는데 죽은 후는 관찰도 실험도 할 수 없으니 과학은 답을 못낸다.   이는 자살에 대한 연구가 힘든 이유와 같다. 자살 후에 살아돌아온 사람이 없으니깐 말이다.

불교는 윤회설이라 죽은 후에 다른 사람이나 동물 처럼 환생한다고 하고, 기독교는 직선이라 죽은 후에는 돌아올 수 없고  천당이나 지옥을 간다고 한다.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은 기독교 테두리안에서예수 밖에 없다.

 

소설과 영화, 종교

사람들은 소설과 영화를 통해 사후세계를 얘기한다. 최근에 본 넷플릭스 영화 『 디스커버리 (2017』는 의식의 일부가 사후 간다는 얘기를 한다.  부작용은 자살이다. 지금이 힘드니 죽자는 거다.

고등학교때 국사시험 문제로 자주 나온 문제 중에 조선시대 기독교가 전파된 이유는 무엇인가이다. 답은 기독교의 내세사상이다.  양반이 아닌 계급의 사람들은 지금은 힘들지만 살아 있을 때 기독교를 믿고 교리에 맞는 행동을 하면 죽어서 천당에 간다는 거다. 그러니 지금 힘들더라고 이 종교를 믿으면 죽어서는 좋은 세상에서 살 수 있다는 희망이다.

 

내가 인식하는 세상은 뇌의 작용일 뿐

어떤 약물을 먹으면 전생을 본다고 하는데 잘때 꾸는 꿈 처럼 뇌의 작동인지 알 수 없다.

사람이 인지하고 인식하는 것 자체를 다 믿을 수는 없다. 인풋 아웃풋은 육체가 하지만 그걸 인지하고 인식하는 건 뇌가 하는 거라 무엇이 존재하고 존재하지 않는 건 뇌에서 일어나는 것 뿐이다.

찻잔속의 태풍처럼 모든에 뇌속에서 일어는 것이다. 물론 육체도 기억하고 있는냐도 얘기하지만 나는 자동화라고 본다.

 

 

죽음이란? 전원이 꺼진 컴퓨터

에일 대학 철학자 엘리 케이컨 교수의 『 죽음이란 무엇인가』 라는 책이 있다.

오래 전에 읽어서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죽음의 의미 보다는 죽은 후의 상태가 기억난다. 이 사람은 간단하게 얘기한다. 죽은 후에는 컴퓨터가 꺼지듯이 그냥 꺼진 것이라고 말이다.

내가 생각하는 죽은 상태와 같다.

컴퓨터에는 상태의 전환이라는게 있다. 그런데 상태가 전환된다는 건 그 실체가 있다는 거다.  그래서 죽음은 의식이 없는 상태이면서 상태를 가질 수 있는 물리적인 육체도 없는 거라고 생각한다.  약간 심신일원론과 비슷하다. 영화 처럼 정신만 컴퓨터로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안한다.

 

 

죽음이란? 육체가 없는 전원이 꺼진 상태

죽으면 육체는 없고 정신은 전원이 꺼진 컴퓨터 처럼 인식이 없는 상태이다.  존재하는냐 안하느냐에 대해서는 모르겠다.  우주는 어떻게 생겼는지에 대해 그냥 빅뱅이라고 큰 폭발이있어서 없었는데 갑자기 생겼다고 얘기한다.  직선의 시간과 3차원 공간에서 살아온 내 머리로는 이해가 안가는 것이다.   난 호기심이 너무도 많은데 이제는 조금씩 포기하는게 있는데, 그런것 중에 우주의 탄생과 사람은 왜 태어나기 전에 어디에 있었는지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이다.  없던 엔터티가 생긴 것을 이해할 수 없으니 생기는 일이다.  그래서 죽으면 정신적으로 전원이꺼진 컴퓨터처럼 의식이 없고 그 컴퓨터도 없는 상태이자 null 이다.

컴퓨터 프로그램에는 null 과 nil 이 있다. 컴퓨터 프로그램이 갑자기 죽었다면 대부분 프로그램 코드에서 null 인 메모리를 접근해서이다.  null 은 없다는 게 아니라 없는 , 컨트롤 할 수 없는 것을 의미한다.  없다고 지정하는 것은 수학의 0처럼 명시적으로 nil 이라고하니 nul 은 없는데 없다고 알 수 없는 거다.

정신과 육체가 하나일까 별개일까의 오래된 심신일원론, 심심이원론의 이슈가 있다.   이 이론을 알면서 고민해 왔는데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될까에 대한 답을 찾다가 심심일원론으로 기울어지고 있다.

죽음 = 의식이 없는 상태, 그리고 그 의식을 담은 육체도 없는 상태라고 생각한다.

 

 

다중인격자, 수면과 코마상태

그래서 수년 동안 고민하고 있는게 있다.

바로 한 사람이 여러 성격을 갖는 다중인격자이다.  게다가 다중인격끼리 대화하는 드라마나 영화를 볼때 그럼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또 한가지는 잠이 들고 잠이 깨는 것이다. 전구에 불이 들어오듯이 잠이 들면 의식이 꺼진다. 물론 지금까지 밝혀진 것은 잠을 자는 동안 육체를 셧다운 시키고 뇌는 처리를 하고 있다. 우리가 가위가 눌린다고 하는것은 뇌가 움직일때 의식이 들었는데 육체는 안움직인 상태이다.  내가 궁금한 것은 의식이 어떻게 꺼지고(?) 들어오는 것이다.

코마 상태에 들어갔을때 어떤 약물을 쓰는지 찾아 보았는데 전문용어라서 그런지 잘 모르겠다. 드라나 영화는 그냥  바이탈 수치만 보고 기다리자고 한다.

냉동인간도 마찬가지이다.  지금은 해동시킬 방법은 모르겠지만 냉동은 시킨다. 미래에는 해동시킬 기술이 있을 테니 해동시켜 아픈데가 있으면 고칠거라고 한다. 그런데 육체는 내동한다는걸 아는데 정신은 그대로 라는 것을 아는 걸까? 그냥 컴퓨터에 전원이 들어오면 운영체제와 같은 소프트웨어가 돌듯이 뇌에 피가 돌면 정신이 거기서 부팅이라도 하는 것일까?     양자역학으로 물체를 원거리로 전송한다. 사람을 전송하면 그 사람의 정신도 갈까? 정신의 뇌에 들어 있어 피를 통하면 뇌에서 정신이 부팅될까?   나 죽기 전에 이걸 알면 좋겠다.  죽은 후에도 내 예상과 다르게 의식이 있어 천당과 지옥이나 환생을 경험하게 되면 그때 알게 될테니 심신일원론과 이원론은 죽기 전에 알면 좋겠다.

 

내 호기심에 비해 내 능력로는 이해할 수 없는 과학 이론이 너무나 많다. 몇년 전부터 내 덜떨어진 지능으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해하는걸 많이 포기했다. 그런데 아직 포기하지 못하고 고민하게 있다.  죽은 후에는 어떻게 되는가이다. 죽기 전에 최소한 나름대로의 이해를 하고 싶다.

지금까지 내 생각은,  죽으면 전원이 꺼지듯이 의식이 없고 그 육체도 없다.  꿈을 기억하지 못하는(꿈은 꾸는데 기억하지 못한다) 잠을 자는 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죽으면 다음날 꿈을 기억하지 못하는 잠자는 상태에 육체가 없는 상태이자 null 이다.

존재론과 인식론 중 나는 인식론을 믿는다.  내가 지각하지 못하고 인식하지 못하는 우주와 세계는 존재하더라도 나 한테는 없다. 그런게 아니라는 것을 머리로는 알지만 나는 그쪽으로 생각이 쏠린다.  이런 내 생각은 HCI에서 제품의 품질을 객관적인 품질 지표가 아니라 사용자가 지각하는 사용품질이란 개념을 지지하고 인간중심, 사용자 중심의 도구를 만드는게 내 취미이자 미션이라고 생각한다

 

죽는 과정이 두렵지, 죽은 후는 두렵지 않다

이래서 나는 죽는 과정이 두렵지  죽은 후에 대해서 두렵지 않다.  파스칼이 그랬나? 종교를 왜 믿어야 하는 질문에 대해 죽은 후에 천당과 지옥이 있는지 모르지 살아 있을때 믿어두는게 낫지 않겠냐는 보험과 같은 것 말이다.  보험은 돈만 내면 되지만 머리는 그렇지 않다. 물론 나는 프란치스코라는 세례명이 있어 그 세상에서의 이름도 있다^^ 아직 유효한지는 모르겠다.

 

죽음이 두려운 이유는, 이 세상에 가지고있는 것을 잃을까 두려워하는 것이다

죽음이 두려운 이유는? 사실 죽은 후가 두려운게 아니라 이 세상의 인연과 가진걸 잃는게 두려운 것이다.

드라마 <비밀의 숲> 에서 이경영의 대사가 있다.  “개똥에서 뒹굴더라도 이승에서 구르는게 낫다”  난 이걸 계속 고민해왔다. 꼭 그래야하나?

불교는 살아가는 것 자체가 고통이라고 했다. 근데 굳이 살아야하나?

 

 

사람은 삶을 사는 것 자체가 가장 큰 의미이다

생일, 이 세상에서 태어난 날을 축하한다.

난 엄마가 돌아가신 후 부터 내 생일은 슬픈 날이다.  나를 낳아준 사람도 없는데 태어난 날이 뭐가 좋다는 말인가.

그런데 생각해보니 사람은 사는게 다라서 생일을 그렇게 축하해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태어난게 다다. 왜 태어나고 어디서 왔는지 모르지만 삶을 살아가는 거 자체만 의미가 있다.

그래서 자살은 죄악시되고 자살해서는 안된다.  인간은 수명이라는게 있어 죽기 마련인데 왜 태어나고 죽는지도 모르고 살아 있어 삶을 살고 나이들고 늙어가고 죽는게 그냥 한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이고 최고의 가치이다.

죽으면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null 이다. 내가 없는지도 모른다.

내 머리로는 , 아니 아직까지 인류는 소설과 종교 말고는 왜 태어나고 왜 죽고, 태어나기 전과 태어난 후를 설명하지 못한다.

다를 설명하지 못하고 이해할 수 없지만 최소한 확실한건 사는 것 자체만이 의미라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존중 받아야한다

어떻게 살것인가?

사람마다 사는 방법과 과정은 다르다.  노예로 살건 왕으로 살건 간에 사는 것 자체로 의미를 가져야한다. 이론적으로는 말이다.

왜 사냐고?  태어났으니깐

어떻게 살꺼냐고? 내 생각대로, 아니면 그냥 사는대로

언제 죽을꺼냐고? 죽게 되면

가난하건 부자건, 똑똑하건 멍청하건,  국짐당을 믿건 아니건 사람은 누구나 존종받아야한다.

단 조건은 있다. 사람으로서 누구나 마땅히 여기는 것을 하는 수준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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