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펜하우어의 토론의 법칙

‘쇼펜하우어의 토론의 법칙’은 136페이지로 양적인 측면에서는 금방 읽을 수 있는 분량이지만, 38가지의 토론술 하나하나를 생각하기에는 분량이 너무 적은 것 같다.

쇼펜하우어가 만든 하나 하나의 기술에 대한 사례가 너무 없어서 강사 같은 사람이 설명해 주지 않으면 실제 기술 사용은 어려울 것 같다.

책 뒷 표지에 보니 쇼펜하우어가 이 책을 쓴 배경이 헤겔 때문이라고 되어 있다.

당시 주류였던 헤결의 철학을 멸시 하다가 베를린대학 강사로 간 쇼펜하우어가 일부로 헤겔과 같은 시간대에 강의를 개설했는데, 패배하고 학교를 떠났다고 한다.

이 책은 헤결과 그 도당들의 교묘한 수사학에 대적하기 위해서 쇼펜하우어가 작성한 책이고, 쇼펜하우어가 죽고 나서 출간되었다고 한다.


쇼펜하우어의 토론의 법칙은 무조건 이기기 위한 방법

토론, 논쟁에 대한 정의는 여러 사람들이 한 것이 있을 것 같다. 나는 깊이 알 수준은 아니고 사전적인 내용으로만 확인해 보니 다음과 같았다.

If there is discussion about something, people talk about it, often in order to reach a decision.

위키피디아에서는 discusstion 을 debate 와 같이 사용하고 있다.

Debate, also debating outside the United States and Canada, is a formalized system of (usually) logical argument. Rules governing debate allow groups and individuals to discuss and decide issues and differences.

야후! 사전에서 찾은 유사어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 argument 사리를 밝히고, 증거를 들어 주장을 폄으로써 상대방을 납득시키려고 하는 일.
  • discussion 어떤 문제를 화제로 삼아서 여러 가지 견해를 끄집어 내는 일; 언쟁과는 관계가 없다.
  • debate 공적인 문제에 관한 집회에서의 discussion.
  • controversy 어떤 문제에 관해서 의견을 크게 달리하는 많은 사람들이 몇 개의 파로 갈려서 논문·연설 따위의 형식으로 행하는 장기간의 논쟁.
  • dispute 싸움 일보 직전의 격렬한 말다툼.

그런데, 쇼펜하우어는 진리와 상관없이 무조건 이기는 것이 토론술의 목적이라고 말하고 있다.

만약 진리를 찾아가는 목적으로 토론을 할 경우에는 토론술이라는 기술은 쓸모가 없다. 오히려 정치가의 좌담회와 같이 무조건 남을 이기기 위해서는 쇼펜하우어의 토론술을 써야 할 것이다.


짜증나는 토론

짜증나는 토론이 있다. 그것은 해결책을 찾아야 하는 토론인데도 편이 갈려 있거나 자기 주장을 어떻게 해서든 관철시키는 모양으로 진행되는 토론인 것 같다. 그러나 쇼펜하우어는 100명중 한명 정도와 제대로된 토론이 가능하다고 했다.

실제로도 우리가 경험하는 대부분의 토론은 서로 다른 생각을 하나로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주장들이 난무하는 토론인 것 같다. 토론 문화가 아닌 우리 나라의 특성인지는 모르겠지만, 토론이 생활에서 자리잡은 것이 아니라면 학교나 사회에서 따로 배워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것 같다.

토론을 하다 보면 자존심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한 사람들도 있다. 또는 다른 사람 보다 더 많이 알고, 더 잘 안다고 생각해서 다른 사람의 생각은 무조건 틀렸다는 태도를 보이거나, 부분적인 내용만 취사선택하는 사람도 있다.

이 이야기 했는데, 저이야기 하는 사오정도 있다. 무조건 자기 말이 많다고 고집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들 하고는 토론을 하기가 싫다.

짜증나는 토론을 하는 다른 유형도 많을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는 안그런다고 하지만, 나를 포함해서 짜증나는 토론을 만들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싶다.

토론할 때에는 다른 사람의 생각이 나와 다르다고 해서 틀렸다가 아니라, 단지 다를 뿐이라고 생각하고 접근하는 방식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어차피 진리라고 하는 것도 아직 까지는 서로 맞다고 생각하는 것이니(그냥 내 생각이다) 우리가 맞다고 생각하는 것도 틀렸을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우리의 생각은 변한다.

존경하는 사람과의 토론

토론에 임하는 사람의 관계에서도 평등한 상황이 아닌 경우가 있다. 존경하는 사람과의 토론, 나 보다 더 많이 공부하고, 경험이 많은 사람과의 토론, 사장과 직원처럼 상하관계에서의 토론은 상황이 자유롭기는 힘들 것 같다.

지난 주 HCI학술대회에 가서 교수님을 만났는데, 격렬한 토론을 강조하시면서 싸이몬과의 토론에 대해서 얘기해 주셨다.

뉴엘 (Allen Newell)이 돌아가시기 전 주 까지 뉴엘과 리서치 미팅을 했고, 그 미팅에서 다음 주에 죽을 수도 있으니 그러면 싸이몬한테 가라고 했다고 한다.

뉴엘은 그 다음주에 돌아가셨고, 교수님은 싸이몬 (Herbert A. Simon) 한테서 지도를 받았다고 한다. 그 때 싸이몬의 연세가 80살 정도 되었다고 한다.

리서치 미팅때 얼마나 격렬하게 토론을 했던지 싸이몬의 비서나 다른 연구실의 비서가 싸이몬의 건강을 걱정해서 연구실로 들어올 정도였다고 한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싸이몬과 논쟁을 한 것을 자랑하는 것이었는지도 모르겠지만, 교수님은 학생들은 교수와 논쟁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셨다.

그런데, 우리나라 정서에서 존경하는 교수님이라면 그 사람의 말이 틀릴 수도 있다고 대들 수 있는 학생이 얼마나 될까? 나 보다 오래 살았고, 나 보다 더 많이 아는 사람이 이렇게 얘기하면 그렇게 믿어야 하지 않을까? 아마도 나 처럼 싸가지 없는 사람이나 교수한테 들이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토론(discussion), 논쟁(debate)은 글쓰기 만큼 지식노동자들 뿐만 아니라 살아가는데 중요한 기술인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배워본적이 없는 것 같고, 오히려 대학원에서 논문 토론을 할 때 조금, 그리고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뒤늦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이런 저런 책들을 보면서 배우고 있는 것 같다.

좀 미리 갈켜주면 안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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