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서치 vs. 연구

단어에 대해서 사람들은 나름대로의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 같다.
나는 디자인 vs. 설계 라는 포스트에서 디자인과 설계가 나 한테는 다른 의미라고 한 적이 있다.

이번에는 리서치와 연구에 대한 생각이다.

나는 어렸을 때 ‘연구’ 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그런다고 내 아버지가 교수이거나 주변에 연구소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어렸을 때 배에서 일하는 삼촌이나 아저씨들은 ‘연구’ 라는 말을 자주 했다.
그당시에는 철공소에서 배를 고쳐주었는데, 그 삼촌들이랑 아버지와 뱃일을 하시는 분들은 항상 연구를 하셨다.

"스크류 샤우도 구멍을 통해서 물이 자꾸 들어온다. 이걸 한번 연구해 보자"
"비가 오면 배에 빗물이 찬다. 그래서 장마철에는 새벽에 가서 물을 퍼야 한다. 어떻게 할까"
"배를 선창에 댈때 줄을 빨리 묶어야 한다. 어떻게 하면 풀리지 않고 빨리 줄을 묶을지 연구해 보자"
"기름 보일라를 놓자. 이걸 어떻게 놓을지 연구해 보자"
"배를 어떻게 하면 흔들리지 않게 선창에 댈까?"

내 어릴때 ‘연구는 뭔가 문제를 찾거나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골똘히 생각하거나 여러가지 것을 해 보면서 해결책을 찾는 것‘을 말했다.

그 ‘연구’를 하신 분들은 초등학교를 안나오신 분도 있고,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않은 분도 있다.

그러나 그분들은 문제가 생길 때 마다 연구를 하셨다.

나는 대입학력고사를 보고 나서 뱃일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너 그래서 어떻게 대학교 다닐래?" 엄청 혼이 났었다.

뱃줄을 빨리 매는 방법, 남은 밧줄을 정리하는 방법, 헝클어진 밧줄을 푸는 방법, 배를 대는 방법, 시동거는 방법 등등 엄청 많았는데, 나는 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삼촌들이나 아저씨, 아버지가 연구해 놓으신 것들을 배우기도 바빴다.

어떤 문제가 생길 때 마다 항상 아버지와 삼촌들은 모여서 연구를 하셨다.

어찌 어찌 해서 대학원이라는 곳에 갔고, 연구실에서 ‘리서치’ 라는 것을 했다.
문헌을 조사하고, 이론을 공부해서 가설을 만들고, 그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서 설문 조사를 할 때에도 있고, 실험을 할 때도 있었다. 그리고 나서 데이타를 분석해서 논문을 썼다.

나 한테는 ‘리서치는 일’ 이다. ‘리서치는 논문을 쓰거나 리서치 보고서를 작성 하기 위한 일련의 활동’ 이다.

정말 궁금한 것을 알아보는 것 보다는, 논문이 될 만한 것을 찾아서 궁금해지게 한 다음에 공부를 해서 데이타를 수집해서 논문을 쓴다. 근데, 자꾸 뭔가를 보다 보면 궁금해지기 마련이다

기업에서 최종적으로 돈을 벌기 위해서 일을 한다면, 학교는 논문을 내기 위해 리서치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카데미 인더스트리’ 라고 부른다. 학회지도 그런 맥락으로 볼 수도 있다.

정말 내가 궁금한 것을 알아내기 위해서 정성을 다해서 연구를 했을까? 아님 논문을 쓰기 위해서 리서치를 했을까?

어찌 어찌 해서 나는 회사에서 리서치를 한다. 물론 연구소의 박사님과 같은 그런 연구를 하는 것은 아니다.
제품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디자인이나 프로그래밍 처럼 리서치라는 것을 한다.
이것도 나 한테는 연구가 아니라 리서치 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과 일이 아닌 것을 구별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정말 내가 궁금해 하는 것을 알아 내기 위해서 고민을 하고, 정성을 다하는 것인지 생각해 보곤 하는데, 연구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그런다고 ‘조사’ 라고 하는 것은 조금 슬프다. 그냥 ‘리서치’ 라고 하는 것이 좀 있어 보인다는 생각만 할 뿐이다.

명확히 구별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나한테 리서치와 연구는 이렇게 다른 것 같다.

영어와 한글, 사전상 의미는 같지만, 나한테 이렇게 다르다.

 

Related Po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