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위기에서의 진화


키아노리부스가 나왔던  <지구가 멈추는 날> 이란 영화가 있었다.
이 영화에서 노벨상 수상자라는 사람이 인류를 멸망시키러온 외계인인 키아노 리부스에게  말한다. 정확한 대사는 기억나지 않지만 대충 이랬다.
“인류는 그동안 위기에서 진화해 왔으니 가만히 두면 인류가 해결책를 찾을 것이니 기회를 달라”
생존위기에서의 진화
진화론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여기저기서 들은 바로는 진화를 하는 시점은 바로  생존의 위기라고 한다.
생존의 위기에서 진화한 종은 살아 남고 그렇지 못한 종은 끝난다.
기업의 조직도 그런지 모른다.
미해병대에서 배우는 자기혁신조직 을 보면 생존을 위해서 부단히도 스스로 혁신을 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개인도 그럴지도 모른다.
그런데 사람은 그 생존 위기가 진짜 턱밑에 와서야 깨닫는 것이 문제다. 뭐, 개구리를 물에 넣고 열을 가하면 서서히 끊어서 변화를 알지 못하고 죽는다고 하지 않는가.   그러나 100도가 되어야 물이 끊는 것 처럼 임계점이 있다.
이 임계점은 과학적 사실이지만 사람은 주관적인 존재라서 인지하는 그 점들이 다른 것 같다.  정말 생존위기를 결정하는 시간이라고 느끼는 때가 지금 부터 10초 이내인지, 아니면 일주일, 한달 , 1년인지는 개인마다 다르다. 게다가 사람은  변화를 선천적으로 싫어 한다. <뇌, 욕망의 비밀을 풀다> 라는 책에 보면 뇌과학에서는 이를 에너지를 덜 쓰기 위해서라고 하는 얘기도 있다.
아이들과 같이 공룡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다 보면 생존에 대한 진화관점을 보게 된다. 살아 남기 위해서 뭔가를 한 종과 그렇지 않은 종을 본다. 뭐 하고 싶은 대로 내가 내 몸을 진화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고, 된다고 해도 그게 일이백 년만에 되는 것도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한 해석을 보면 그런 것 처럼 보인다.
위기에서는 늘 하던대로 살아서는 도퇴하게 된다.
위기가 기회라고 한다.
이 말은 위기에서 낙담하지 말고  희망을 가지라는 것 같고, 어쩌면 위기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 진화해야 한다는 의미인지도 모른다.
난 늘 하던대로 살고 있는가, 아니면 진화를 위해서 몸부림 치고 있는가?
위기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생물학적으로는 단기간에 진화를 할 수는 없다.  진화해서 살아 남은 것이 아니라 살아 남은 것이 진화한 것이다.    위기에서 살아남지 않은 것은 도퇴되고 살아남은 것만 다음 세대를 이룬다.  결과적으로 진화한 것이 되려면 위기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우성이 아니라면 이대로 살아서는 안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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