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전적 보상/벌금의 한계

사람은 무엇으로 움직일까?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사람이지만, 눈에 보이는  세상과 눈에 보이지 않은 세상을 만드는 것도 사람인데, 그 사람을 움직이는 것이 “동기” 라고 하니, 동기라는 것은 참 흥미로운 주제인 것 같다.

직장 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동기가 있는 것 같다.

어떤 사람은 일이 재미 있어서, 꿈이라서, 사람들에게 인정 받고 싶어서, 돈을 벌고 싶어서, 먹고 살아야 해서  등등이 있고, 어떤 경우에는 어떤 한가지 이유가 동기가 되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몇개가 섞이기도 한다.

어떤 경우에는 결과에 대해 처음부터 그랬다고 합리화 하기도 하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동기를 잊어 버리고 살기도 한다.

직장을 나가서 일을 하면 돈을 준다. 돈과 같은 것이 요즘 같은 자본주의 시대에서  보상의 도구가 된 것 같다. 진짜 돈이면 될까?  물론 아닐 수도 있겠지. 아닌 것이 있다면 어떤 것이 아닐까? 이런 점들이 궁금하다.

직장에서 인사 평가가 되고, 인센티브나 연봉을 결정하는 시기가 오면, 이런게 더 생각이 난다.

나는 돈을 받은 만큼 일했을까?  나는 일한만큼 돈을 받았을까?  아니,나는 일한 만큼 인정을 받았을까?

 

마이클샌델이 <돈으로 살수 없는 것들> 이란 책에 제시한 사례를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스위스는 방사능 핵 폐기물을 저장할 장소를 찾으려고 수년간 노력해왔다. 국가가 원자력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데도 자신이 거주하는 지역 한가운데 핵 폐기장이 들어서는 것을 원하는 지역사회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핵 폐기장 후보지 가운데 스위스 중부에 있는 인구 2100명의 볼펜쉬셴이라는 작은 산악마을이 거론되었다.

1993년 핵 폐기장 건립 장소를 놓고 국민투표가 실시되기 직전에 일부 경제학자들이 마을 주민을 상대로 조사를 실시하여, 만약 스위스의회가 자신들의 마을에 핵 폐기장을 건립하겠다고 결의하는 경우에 이를 받아들이겠다고 투표할지 물었다.

거주지 주변에 핵 폐기장이 들어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견해가 많았지만 근소한 차이로 거주민의 과반수인 51퍼센트가 받아들이겠다고 답했다. 마을 사람들의 시민적 의무감이 핵 폐기장 유치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성에 대한 우려를 누른 것이다. 여기에 경제학자들은 감미료를 제시했다. 의회가 당신이 속한 지역사회에 핵 폐기장을 건립하겠다고 발의하고 각 주민에게 매년 보상금을 지불하겠다는 제안을 했다고 가정하자.

그렇다면 그 안건에 찬성하겠는가?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지지율은 오히려 떨어졌다. 재정적 유인책을 추가하자 핵 폐기장 건립에 찬성하는 비율은 51퍼센트에서 25퍼센트로 절반가량 떨어진 것이다. 보상금을 지불하겠다는 제안이 핵 폐기장 건립을 자발적으로 받아들이겠다는 주민의 의지를 실제로 약화시킨 것이다. 보상금 인상 제안도 효과가 없었다.”

 

처음에 그 거주자들의 51%는 핵폐기물을 받아 들이기로 했는데, 이는 시민의식으로 가지고 감수 하겠다고 한 것이다. 그러나 금전적인 보상을 한다고 하는 순간, 그 가치가 갑자기 금전으로 환산이 되었고, 오히려 의지를 약화시키게 된 것이다.

즉, 로또 정도의 돈을 지불했으면 모롤까,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었던 것 같다.

 

직장에서 인사평가로 인한 인센티브나 연봉이 결정되고 나면 모두 행복한 것은 아닌데, 이런 피드백도 있다

“사실 연봉 크게 차이 나지는 않는다/나는 먹고 살만하다. 나는 내가 일을 잘 했는지 인정 받았는지 알고 싶다”

 

이런 경우도 있었다.

전에 성과를 잘 낸 죽도록 일한 직원의 포상을 추천 했는데 안되고 다른 부서의 직원이 되었다.  너무 속상해서 사장님을 찾아갔다.

상 안줘도 좋으니 가서 어깨를 두드려주면서 “고생했다” 한마디만 해주세요. 그럼 됩니다라고 했다.

그 사장님은 그 정도로는 부족하다면서 데려가서 밥사주고 좋은 애기를 해주셨다.

 

돈으로 보상을 받으면 그 보상이 반감되는 실험이 있다. (사례가 뭐였는지 잘 생각이 안나서 생각나면 넣을 생각이다)

 

보상 말고 벌금의 예도 있다. 이스라엘 한 유치원의 사례이다.

 한 유치원의 교사들은 방과 후 아이들을 늦게 데려가는 부모들 때문에 종종 퇴근이 늦었다. 그래서 교사들은 아이들을 늦게 데려가는 부모들에게 벌금을 부과하기로 결정했다. 물질적 손해를 면하기 위해 지각하는 학부모가 줄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오히려 벌금을 부과한 이후, 지각하는 학부모가 2배로 늘었다. 지각에 대한 죄책감이 벌금을 내면서 정당화된 것이다.

어쩌면 아직 까지는 있는 미안함, 죄책감 같은 것이 있었는데, 이런 미안함을 돈으로 바꾸면서 “그래 돈 내면 되지” 하면서 정당화 된 것이다.

인지과학이나 조직심리학,  행동경제학, 조직행동론 등에 보면 이런 사례들이 많다.

 

남에게 인정 받는 것, 미안함, 시민의식, 봉사 등등을 금전적 가치로 환산하는 순간,  사람들은 가치 기준을 바꾸는 것다.

금전적 보상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것이지만, 우리는 여전히 그렇지 않은 가치들에 대한 동기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인류가 언제까지 미안해하고 측은지심을 가지고, 봉사하고 헌신하고 남을 사랑하고 어른을 공경할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인간에게는 이런 점들이 아직 많다.

물론 돈을 많이  받는 것이 좋겠지만 우리를 움직이는 동기는 꼭 돈만이 아니라 이런 점들이 있으니 이런 점들이 삶을 살아가는데나 직장에서도 잘 고려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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