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사람은 인생은  태어나면서 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죽는 다.  내가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도 아니고 죽는 것도 필연이다.  언제 죽을지도 내 의지로 되는 것도 아니다.  아직 동물에게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고 하는 자살이라는 방법이 있기는 하지만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내가 주체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 밖에 없다.

내 생명의 유한함을 인정하고,  살아 있는 동안 하는 일에도 제품의 유통기간 처럼 끝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데 그게 잘 안된다.

종교는 저승이나 천당 같은 내세 사상이나 죽은 후에도 다시 태어나 이세상을 사는 윤회사상을 만들어 영원히 살 수 있다는 믿음을 설파한다.  문학이나 영화는 세상이나 다른 사람의 인생과 가치관을 스토리로 이야기한다.

내가 고민하고 있는 문제에 대해 관련된 몇개의 이야기들을 묶어 보았다. 문학에서 읽은 내용이 많으나 블로깅 하며 바로바로 인용할 수 없는 내 미천함이 아쉽다.

 

 

300년 후 깨어 난다면?

 

알쓸신잡 1에서 냉동인간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김영하는 관계가 사라진 후의 삶은 의미가 없음을 이야기한다.

“우리는 모두 나라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타인에게 비친 내 모습들을 합친 것이 나이다.

관계가 다 모두 사라진 후의 삶이 무슨 의미가 있을 까? “

 

 

 

유시민은 300년 후 깨어났을 때 내 가족과 친구가 다 죽었을 텐데 그 삶이 무슨 의미가 있냐 이야기 했다가 나중에 수정 한다.

 

 

정재승은 다시 깨어난  후에 삶의 의미가 무엇이고 어떻게 살지에 대해서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생각을 해야 한다고 문제를 제기한다.

 

 

이 대목에서 유시민이 자기 생각의 한계를 인정하고 바꾸는 것을보는 것은 정말 놀라웠고,  삶의 의미 중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캡틴 아메리카

마블의 캡틴 아메리카는 깨어나 아는 사람이 없었지만 악당을 물리치는 삶의 의미를 둔다.

그러나 어벤저스 마지막에서 냉동 될 당시의 과거로 돌아간 후  다시 돌아오지 않고 그 시대의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늙어간다.

 

영화의 계약이나 설정 상 그런 거겠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랑 사는 의미에 대해 또 생각하게 된다.

 

 

만약 인간이 죽지 않는 다면?

영화, 넷플릭스 올드 가드 는  죽지 않은 불멸의 전사 이야기이다.  사실 그들도 죽기는 한다. 그러나 총에 맞아도 치유되고 기한은 모르겠지만 천년 넘게 살기도 한다.

그들은 죽지 않고 영원히 살아서 좋을 까?

죽지 않아서 좋다는 이야기는 안나온다. 쩝

 

그럼 그들에게 가장 큰 고통은 무엇일까?

죽지 않는 것이다.

후속편이 나올 것 처럼 마지막 장면 떡밥에서 불멸의 멤버 한 명이 나타난다.  그녀는 종교전쟁 때 마녀로 몰려 화형을 해도 안죽자 수장을 당한다.  물속에서 숨을 쉬지못해 죽는다. 그러나 또 살아난다. 그리고 숨을 못쉬어 죽고 다시 살아난다. 극심한 고문이나 고통을 당하는 환자가 하는 차라리 죽여달라는 말이 이해가 간다.

 

다른 고통은 무엇일까? 외로움이다.

영생을 찾는 바이오회사에게 멤버를 배신하는 이유는 죽는 방법을 찾을 수도 있다는 희망에서였다.

나중에 이 멤버에게 벌을 준다.  형벌의 최고형인 사형을 줄 수 없는 이 멤버에게 주는 벌은 무엇일까? 바로 100년 동안 만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는 벌은 외로임이다.

보통의 사람을 사랑하면 죽으니 죽지 않은 멤버와 같이 지내는 것이 유일하게 외로움을 견디는 방법이라 그들은 같이 다닌다.

아들이, 손자가 죽어가는 것을 보는 것,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가는 것을 본다. 그래서 그 불멸의 사람들은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유한한 인간은 언젠가는 죽기 때문에 사별의 고통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다.

 

 

영화, 바이센테니얼맨

2000년에 개봉한 영화, 바이센티니얼맨(Bicentennial Man)은 바이센티니얼은 200년 주기 또는 200년간 계속된다는 의미니깐 200년을 사는 사람이라는 뜻 같다.

 

자아를 가지고 사람을 사랑한 인공지능 로봇은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죽는 결정을 한다.

200년을 살아도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의미는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로봇을 연기한 로빈 윌리엄스는 자살로 생을 끝냈다.

 

 

실연, 상실, 이별의 감정적인 고통도 육체적인 고통과 같은 고통이다

죽어서 이별하는 사별이건 간에 이별은 사실 팔다리가 잘리는 것도 아닌 정신적인 것인데 사람이 감당하기 가장 어려운 고통인 것 같다.  최근 의학이나 심리학 연구에서는 실연이나 이별을 겪는 사람들에게 진통제를 먹였을때 고통이 완화된다고 한다. 실연이나 이별도 고통이라는 결론을 낸다.

아이를 낳을때의 극심한 고통을 잊게 하는 호르몬인 엔돌핀은 진통제이다. 육체의 자극은  뇌가 감각해야 느낀다. 그러니 어찌보면 정신적인 실연이나 이별로 인한 고통, 우울증이 가장 큰 고통인지도 모른다. 육체적인 몸의 자극 없이 일어나는 일이라 아직 현대 의학에서 우울증 약은 외과 수술에 비해 발달하지 않았다.

 

 

영원히 사는 학습하는 기계가 바꿀  인간 삶의 가치관

인류의 최초 역사 부터 지금까지 살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인 영화 맨프럼어쓰는 뒤통수를 때린다.

그러나 본인은 기독교나 종교에 관련은 하지만 세상에 기여는 하지 않았다.

 

 

불멸인 이 사람들은 가드로 인류를 보호했다.  맨프럼어쓰의 주인공 보다 인류에 영향을 줬다.

이런 영원히 사는 사람들은 가드도 좋지만 의학이나 과학을 공부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사람은 죽기 때문에 그 지식과 경험도 유한해서 사람은 처음 부터 다시 배워야 한다.   나는 인간의 유한함과 심리적인면이  이 세상을 유지하고 있다는 생각한다.

개개인 입장에서는 태어난 사람의 지식은 0에서 부터 시작한다.  다행히 문자가 있어 죽은 사람들의 지식을 배울 수는 있지만 100년도 못살고 뇌는 한 50년 정도만 제대로 쓸 수 있으니 세상은 유지된다. 그나마 가끔 천재가 나와서 그나마 세상은 조금씩 발전한다.

쉬지도 않고 죽지도 않은 기계가 학습을 하는 세상이 열리고 있다. 사람들은 문명이 이기를 기대하면서 동시에 일자리를 걱정한다.

영드, 휴메인에서 공부를 잘하는 아이가 공부를 포기한다. 아무리 해봤자 인공지능 보다  더 잘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가장 심한 말은 죽여버리겠다가 아니라 왕따시키겠다가아닐까

 

기분 나쁘게 하는 욕은 많지만 말할 수 있는 가장 심한 말은  죽인다는 말이다.  형벌의 최고형이 사형인 것 처럼 말이다. 한번 밖에 못하는 인간이기에.

만들어낸 이야기이긴 하지만 사람들은 소설이건 영화이건 간에 이야기를 형식을 통해서 이야기한다. 그리고 위에서 살펴봤듯이 사회적 동물,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의 중요함을 볼 수 있다.

사회적 동물로서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속에서 살아가는 세상에서 외로움은 다른 육체적 고통 보다  더 심한 고통일지 모른다. 학교나 직장 같은 사회적 생활을 하는 조직에서 따돌림, 왕따는 그 어떤 물리적 고통보다 더 심한 것이다.

외로움 뿐만 아니라  정확한 용어의 차이는 모르겠지만 따돌림, 인정 받지 못하는 일, 우을증 등 정신적은 고통이 가장 큰 고통인 것 같다.

 

 

유한해서 다행이다

어렸을 때에는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 간당간당하지만 석유가 없어지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크면서는 지구온난화로인한 빙하기는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없을거라 생각하고 안심했다.

30년전 학부때 인공지능 수업을 들을 때에는 좀 다른것 같지만 기술은 미천해서 무시했다.  대학원에서 의대의 뇌 수업과 전산과의 뉴럴넷 수업을 들을 때에는 심볼리즘이 아니라  커넥시즘의 세계관에서 흥분했지만, 뉴렐넷의 기계 학습이 히든레이어나 조정하고 그것도 또한 알고리즘이었고 안정된 양자컴퓨터가 있어야 해서 그나마 심볼릭과 뉴럴넷의 장점을 합한 솔루션 정도를 내기에  빙하기에 비해서 걱정할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젠 디지털 데이터는 양자컴퓨터가 아니어도 학습의 소스가 되었고, 심볼릭 컴퓨터에서 돌아가야 하니깐 여전히 알고리즘이지만 알고리즘이 아닌 것 같은 알고리즘은 발전하고 컴퓨팅 기술도 이걸 충분히 쓸만 큼 발전했다. 결과에 대한 이유는 모르지만 확률로 결과를 내는 기계는 인간과 달리 쉬지도 않고 죽지 않으니 지식은 쌓여지고 새로운 지식도 생산하고  아트라고 부르는 것도 한다. 이런 기술로 사람이 행복하게 살 수 있게 필요한 도구를 만들고 싶어 흥분되지만  윤리나 삶의 가치관의 혼돈은 감당하기 어렵다.

다행한 것은 이게 지수에 지수로 발전해도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 내 삶이나 가치관을 근본적으로 흔들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어릴때에 비하면 내 남은 수명은 훨씬 짧아져 팔십 이전에는 죽을 것이기 때문이다.

드라마 <비밀의 숲>에서 이경영은 개똥밭에서 굴러도 이승에서 굴러야 한다고 하지만 사람이 유한한 것은 불행이 아니라 다행일 수도 있다. 물론 합리화하는 것이지만  산다는 의미나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답도 없는 질문을 안고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에게 생명이 유한함은 내가 답을 낼 필요가 없게 해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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