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한 정하기


인간의 생명은 유한하다.  많아야 100년 정도 산다.  사고를 당한다면 10대,20대에도 죽을 수 있다.  인간은 죽는다는 이 당연한 진리를 알지만 살면서 영원히 살 것 처럼 생각하고 행동한다. 아마도  정확히 언제 죽을지 몰라서 그런 것 같다.
영원히 대통령을 할 것 처럼, 영원히 팀장, 대표를 할 것처럼 사람을 막대하고 권위를 부리는 사람도 있다. 이명박이 퇴임후 법정에서 그랬단다. “내가 이렇게 될줄 몰랐다”.
반대로 노무현처럼 5년이라는 한시적인 시간임을 인정하고 최선을 다하고 그 후에도 돌아갈수 있게 시민사회를 만들려고 하는 사람도 있다.
 
서비스실장, 센타장을 맡았을 때 직원들에게 주장했다.
“우리가 이 서비스들을 영원히 맡지 않는다. 길어야 2~3년 동안 잠깐 위임 받은 것이다.  이 한시적인 시간 동안 우리가 이 서비스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위해 의미 있는 것을 주자. 선배들이 못한 것을 해내고, 우리도 뭔가 의미 있는 것을 해서 후배들에게 넘겨주자.  새로운 서비스도 만들고 일으켜서 사용자와 회사에게도 의미있고, 후배 직원들도 여기와 일할 수 있게 하자”
같은 말을 엄청 반복 했기 때문에 꼭 위와 같은 워딩은 아니겠지만 한시적이라는 것의 방점을 두었었다.
나는 이 한시적인 시간 안에서 이 서비스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더 잘 활용해서 삶이 더 좋아지고 돈도 벌 수 있고, 우리 직원들도 보람을 얻고 성장할 수 있게 하고 싶었다.
발령이 나서 이 일을 시작했지만 또 다른 발령이 나서 못하게 될 날이 오기 전에  이 시대 사람들이 우리가 만드는 서비스를 더 잘 사용할 수 있게 하려고 보니 마음이 급했다.
결국 큰 보드 2개와 엑셀에 정리한 기능들의 반도 못하고 다른 일을 하게 됐다.
기획자, 운영자, 개발자, 디자이너, CS 와 늘 12시 넘어서 까지, 주말에도 치고 받았다. 더 좋게 만들지 못한 점은 아쉽다.  권한이 있을 때 서비스를 더 좋게 만들고 직원들을 더 성장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나마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니 조금 위안이 된다.
그 후 7~8년이 지나 그때 같이 했던 사람들 중에 가끔 연락을 해준다.  그때 우리가 참 잘한 것 많았다고. 그때 생각 난다고, 힘들었지만 좋았다고 한다.  다행이다.
시간을 정해놓고 시작했지만  하면 할 수록 할게 보여서 자주 우선순위를 평가했다. 그래도 아쉬웠다. 기회는 늘 오는 것이 아니니깐.
 
기한 정하기
 
시한부를 선고 받는 환자가 있다. 많아야 6개월, 1년, 2년을 선고 받는다.  내가 이런 선고를 받으면 어떨까 가끔 상상을 한다.  3개월, 6개월은 빨리 삶과 사회적 관계를 정리할 것 같고, 1년이면 뭔가 더 남기고 싶을 것 같다.  여행이나 노는 것은 아파서 잘 못할 것 같다.
남은 생이 1년 남았다면?   10년 남았다면? 난 뭘 해야 할까? 어떻게 살아야 할까?
그런다고 너무 막가는 것은 안된다.
‘연습은 실전처럼, 실전은 연습 처럼’ 이라는 말 처럼, ‘삶은 영원히 살 것 처럼 계획하고, 실행은 내일 죽은 것 처럼 살아야 ‘ 하지 않을까 싶다.
 
왜 사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사는지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소중한 사람이 누구인지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할지 생각하게 된다.
정확한 날짜를 몰라서 그렇지 죽음이나 퇴사나 조직변경은 일어나게 되어 있다.  다만 모르는 것을 모른채로 두지 않고 임의로라도 끝날 날짜를 정하면 해야겠다는 느낌이 온다.
나에게로와서 꽃이 된 것 처럼 의미는 나 한테 의미는 내가 부여하는 것이다.  세상은 그냥 존재하지만 내 세상은 내가 인식하는 만큼이다.  남은 생을 어떻게 쓸지는 내가 어떤 관점을 보고 받아들이고 대하는 지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다.
 
기한 없는 생을 마음속에 기한을 정해 놓고 살면 실행력이 좋아진다. 그런데 진짜 삶은 어떻게 해야할까?
법정스님은 왜 사는지를 생각하면 비관론으로 빠진다고 한다.  어떻게 살까에 집중하라고 하는데, 근데 언제 죽을까?  죽음이 올때? 내가 결정하면 안되나?
한번 밖에 못하는 삶이니 견뎌내지 못한 고통에 자살을 해야 할지, 아니면 불교말대로 원래 삶은 고통이니 받아드리고 해탈할때 까지 살아야 하는지, 기독교말대로 하느님은 견딜 수 있는 만큼만 고통을 주니 언젠가는 해결된다고 믿고 살아야할지, 우리 속담처럼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으니 살다보면 될지, 개똥밭에서 굴러도 이승에서 구르는것이 나으니 살아야할지, 버티는 사람이 승자라고하고,  적자생존은 살아남은 자들이 유전된다고 하니 살수 있을때까지 살아야 한다.
생각하는대로 살지 못하면 사는대로 생각하게된다.  생각하는대로 살기 위해 노력해 왔지만 사는 대로 생각하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니라 다른 방법 같다. 환경을 바꾸고 그냥 나를 던지고 살다보면 사는대로 생각하게 된다.  그냥 다른 방법이다.  컨트롤은 직접 하는 방법도 있지만 환경이 나를 컨트롤 하게 하고, 나는 환경을 컨트롤 한다.
어떻게 사는지에 대한 답은 없다. 답이 아니라 과정이 답인지도 모른다. 답을 모를 때에는 방법을 다르게 하고 각 방법에서 의미를 찾아본다.
그래서 인생의 끝이 언제인지 생각하면서 내가 생각한대로가 아니라 사는 대로 생각하게 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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